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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던 코리아, K pop 창세기
[스페셜타임스 정시환 기자] 4월 1일 목요일 저녁 10시 10분 KBS1에서는 모던코리아의 열한 번째 에피소드이자 시즌 2의 마지막 에피소드 창세기>가 방송된다. 창세기>는 대중음악에서 음악산업으로 판이 바뀌었던 90년대와 그 판을 바꾼 뮤지션들이 10대를 보낸 8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이 어떤 시대를 지나 지금의 ’K pop‘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조망한다.
“댄스음악이 주류가 될 줄 몰랐어요. 10대가 대중가요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가능했죠”
1992년, 미국의 보이그룹인 뉴키즈온더블록의 내한 공연. 뜨거운 열기와 흥분으로 인해 수십 명의 10대 관중이 기절하거나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. 부모들은 물론 학교 정부까지 기성세대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, 이 공연은 10대가 새로운 문화 소비층으로 부상했음을 알리기는 신호탄이기도 했다.
“노래는 안 하지만 음악은 합니다” “1년에 100곡을 만들어요” “그때는 신디사이저가 차 한 대 값이었어요”
1980년대 대한민국 음반시장은 아직 음악‘산업’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. 주먹구구식의 레코드 판매와 수익배분으로 뮤지션은 쥐어짜듯이 작업을 이어가던 시기였다. 하지만 이 속에서도 새로운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원하던 선구적인 뮤지션들의 노력으로 전자음악 1세대와 힙합 1세대가 탄생한다. 특히, 디지털 혁명으로 값싸게 보급된 미디(midi)기기를 장착한 젊은 뮤지션들은 실제 연주로는 불가능한 댄스를 위한 수퍼비트(super beat)를 구현하며 K pop의 기틀을 닦아나갔다.
“제가 한국에 보낸 교포 2세의 95%가 ‘누구나 아는 이름’이 되었죠” “90년대 당시 한국에는 ’국제적인 느낌‘의 신인이 필요했던거죠”
1990년대 H.O.T.의 토니와 신화의 신혜성, 플라이투더스카이의 브라이언 등 미국 교포2세의 한국 데뷔의 교두보 역할을 한 미국 브라더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개리 분은 지금의 K pop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1992년 LA폭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.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?
80년대와 90년대의 대한민국 대중음악과 지금의 K pop이 산업으로 태동하기까지. 많은 뮤지션과 댄서들에게 영감을 준 80-90년대 음악들로 채워진 창세기>에는 가수 겸 프로듀서인 이현도, 윤상과 미국 브라더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개리 분이 출연해 K pop의 탄생과 변천사를 회고한다.
창세기>는 모던코리아 [휴거 그들이 사라진 날]을 제작한 임종윤PD와 [대망], [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]을 제작한 염지선PD가 공동 연출했다.
출연자
- 개리 분(미국 브라더스 엔터테인먼트 대표)
- 이현도(가수 프로듀서)
- 윤상(가수 프로듀서)
정시환 기자 jjubika1@naver.co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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